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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팅 그리고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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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블로그를 쓰게된 이유 그리고 현재 다니고 있던 회사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인생에서 겪어야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왜 이회사를 퀴팅해야했는지 돌아보려 한다.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퀴팅: 더 나은 인생을 위한 그만두기의 기술이 출간되어 읽게 되었다.

  •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자
  • 살아남아야 한다

작년 3월은 지옥이었다. 사실 작년 3월에 겪었던 일들만 나열해도 퀴팅의 이유로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모든 문제들이 나에게 있다고 자책하며 고통스러워 했다. 작년 3월은 MVP 제품의 출시 그리고 시연회를 앞두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겪었는데 나는 웹플랫폼 개발을 총괄하고 있었고 기획팀장으로부터 알 수 없는 린치를 당했다.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고 생각했고, 그 기획팀장은 대표와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쓸데없이 대표는 본부장 체제를 갖춰야 한다며 균열을 만들었는데 아니 아마 이전부터 조직개편 작업중이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함에 앞서 대표의 성향을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 대표의 성향은 낙하산 위계조직과 사일로 조직(일을 쪼개서 나눠주는 방식)을 굉장히 좋아한다. 이렇게 전통적인 경영 방식을 취하며 "혁신"이라는 회사명을 달아놓고 스타트업이라고 한다(아마 디지털 혁신인 듯). 그리고 보고를 했지만 보고가 안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경영회의 시간은 왜 혼나는지 모르고 그냥 혼나는 시간들이었다. 인건비 가장 비싼 중간관리자들을 모아놓고 우리들은 비생산적인 시간들을 견뎌야한다. 그렇게 회사는 비싼 회의비용을 치루고 있던 그런 대표였다. 또한 모든 비즈니스 모델은 대표 머리속에 있는데 잘 전달이 되지 않고(전달이 되었다고 믿고 있던 어떠한 구성원에게도 반말로 "그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답답해 함) 그 비즈니스 모델 관련한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맞으며 결함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다시 조직장을 세우겠다던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런 사실을 알아차인 기획팀장은 내정자가 있다고 이야기했고 그게 나라고...(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여기에 친목질하는 집단이 있었다.) 나는 위계조직을 매우 싫어하며 이전 본부장이 퇴사했을 때 우리는 본부장없이 2명의 팀장 체제로 지내겠다고 했던터라, 동등한 지위로 유지하려 했다. 대표는 우리 둘을 불러 본부장을 선임해야한다며 면담을 했고, 1주일안으로 답을 달라고 함. 그래서 기획팀장과 면담을 하면서 이 나는 아무 생각없이 조직개편 상황은 대표 의지가 강력한 것 같으니 내부적으로 역할조직을 유지하고 표면상으로 경력과 연차가 더 있는 내가 하겠다고 했고 기획팀장은 많은 업무량을 줄여서 기획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동의를 받았다. 그 후 기획팀장과 대표의 면담이 있었고 본인은 퇴사하는데 그 퇴사의 이유는 모두 나에게 있다고 함.

내가 간과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 기획팀장이 본부장 야망이 있었다는 사실... (린치의 이유?). 그리고 퇴사 이유가 나였다는 말 또한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다. 그리고 이말은 다른 C레벨들도 알게 되었고, 나는 검사 취조 당하듯 무슨일이 있었는지 시간에 따른 사건들을 나열해야했다. 그렇게 몇개월 동안 나는 동료에게 퇴사 이유가 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고, 오랜기간을 나에겐 그런 문제가 없었다라는 것을 증명해야했다.

그즈음 MVP시연을 하게 되었다. 아마 그 당시 우리 조직에게는 악몽이었을 것 같다. 대표는 시연을 중단시키고 본인이 원했던 것을 나열한다(기획안에 없었던). 그리고 그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기획팀장과 대표 사이에 소통이 안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둘이 회의했던 일이 많았고 심지어 UX팀 전원 대표 보고를 했으니... 결과적으로 MVP 설명회에서 "이거 아니야" 시전이 시작. UX팀도 당황한 기색이 보였는데, 시연 마치고 UX팀에게 화면설계서나 와이어프레임을 보여드린적 없냐고 물어봤지만 꼼꼼히 다 봤다고 한다. 그럼 왜 대표는 저런 행동을 했는지 아는 바가 있냐라고 물어보니 본인들도 모른다고...

바로 조직개편이 시작되었다. "본부장" 체제를 없애고, 파트장 체제로 운영하겠다고... 아니 본부장이 없어서 본부장을 선임하겠다면서? 기획팀장이 나가면서 던진 작은 공인 것 같다. 본부장이나 파트장이나 다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나는 기획업무와 운영업무 계획을 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했는데 이때부터 정신적인 고통으로 시달렸다. 이 조그마한 회사에 우리 조직은 놀고있는 것 같다며 사일로 만들어서 일을 쪼개서 나눠주고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라는 대표와 사소한 친목집단을 제거하고 있는 C레벨 인력과 본부장 하고 싶어 본부장 명함 파고 다니는 중간관리자도 있었고, 우리 조직(본부)를 다른 본부의 파트로 편입시키면서 개발은 다 같은거 아니냐는 대표와 이런 상황을 방관하고 있는 개발 진영의 순한 양과 같은 C레벨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사실 이때 퀴팅을 시도했어야 했다. 하지만 창업자인 교수님에게 "제가 만들면 잘 할 수 있기때문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씀드린 것도 있고, 나는 우리 조직 구성원들이 너무나 잘하고 있기 때문에 공중분해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자 이제부터 MVP 당시에 알수없는 문제에 시달렸던 내용을 포스트모템으로 작성하고 전사 공유한다음, 포스트모템에 작성 한 것 처럼 의사소통 체계를 시스템화를 하고 대표의 요구사항들을 잘 반영해보자며 와이어프레임 보고도 자주 단계별로 하면서 최종 와이어프레임과 화면설계서 기안까지 올려봤다. 그리고 우리 도메인의 전문가를 뽑아 기획자로 두었다. MVP 당시의 요구사항들을 반영한 버전을 6월에 시연을 하였다. 힘들었고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필요한 데이터를 찾고 또 데이터를 끌어모아서 제품을 만들어갔다. 이제는 최종 보고한 와이어프레임대로 만들었으니 9월 출시버전을 새로운 기획자 의견대로 정리를 해나갔고 출시 시연을 하자고 했다. 여기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MVP로 테스트를 해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즉, 이 회사의 대표는 MVP를 프로덕션 레디로 가기 위한 하나의 상태로 생각한다. 사실 정확히 MVP가 뭔지 모르는 것 같다. 마치 PoC 다음은 MVP 그리고 다음은 출시버전의 단계. 이 과정이 필요한 이유가 분명히 있는데 자기맘에 들고 말고가 MVP의 데이터였던 것이다. 전혀 스타트업 스럽지 않으면서 미신에 의존적이었다. "이거 넣으면 무조건 될꺼야" 최소기능제품을 만드는 기간이 너무 길었으며, 최소기능제품에 쓸데없는 요구사항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지막 시연에도 대표는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며 요구사항이 따로 있다는 말을 한다. 이제 알았다. 마치 콩쥐가 뭐를 하던지 새엄마에게 욕을 먹는 것과 같은 느낌이란 것을...

출시는 했고 운영인력이 모자라서 마케팅은 최소한으로 진행하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사용자가 없었다. 애초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 부터 들었던 의문이었고, 이거 만들면 쓸까요? 라는 질문에 답변은 "무조건 쓰고 시장이 크다"였다. 자세하게 어떤 제품인지 여기서 말을 못하겠지만 C고객에게는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한 사건에 의존적이며 소규모 B고객에게는 경험치가 있어서 필요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형 B고객에게는 쓸모없는 제품이다. 결국 고객 타게팅이 될 수 없는 것을 B2C라며 웹플랫폼 조직을 만든게 아닌가 싶은데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끝까지 와본 결과는 참혹했다.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준비가 부족한 것은 우리 서비스가 아니라 회사 경영진 이었던 것 같다.

이때부터 12월까지 다시 조직개편의 스멜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음 듣자하니 그 본부장 명함 파고 다니던 분이 본부장을 하고싶어하니 사업본부를 만들어서 사업 시장성 검토하는 조직으로 만들고 그 하위조직에 모든 조직을 끼워넣겠다는 조직개편. 그리고 나는 증명이 끝났다며 새로온 기획자를 증명하고 싶다며 그렇게 내 지휘하에 있었던 기획자를 본부장으로 끌어 올리고 내가 반대로 지휘를 받는 것. 낙하산 위계조직을 다시 만들어내는 상황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본부장 체제를 다시 도입하는 이유는? 보고가 안되서라고 한다. 보고를 위해 조직장이 만들어지는 것도 우습지만, 나는 대표가 리더의 역할을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 뒷편의 내막에 어떠한 정치질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실 이런 안을 나에게 던진 것 자체가 나가라는 이야기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비즈니스 모델, 개발 경험과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며 퇴근 후에도 고민하고 일을 하고 주말에도 일을 하며 좀더 나은 개선점과 환경을 구성하기 위해 그리고 구성원들의 성장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던 이유. 사실 머리속에서 잠잘 때 빼고 생각했던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조직을 리딩하고 유지하기 위한 나의 책임감에 많은 비중이 있었다. 내가 답을 낼 수 없거나 내가 꼬여있는 비즈니스 문제들을 풀어내지 못하면 무너질꺼라는 생각. 하지만 이런 오너쉽을 강제로 내려놓았을 때 코딩 몽키의 형태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내가 추구했던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남아있어야할 이유가 모두 사라졌다. "개발자에게 물어보세요"에도 나와있다. 개발자는 창의적이어야 한다.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어온 것이지 코딩몽키가 되려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증명이 끝났다고?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대표에게 날 증명하려고 이 회사에 들어온것이 아니었다. 증명이 목적이었다면 이 회사를 왔을리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수학이나 과학을 하는 것보다는 음악을 만들거나 책을 쓰는 것과 더 유사하다. 소수의 엔지니어들이 족쇄에서 풀려나 실제 고객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해결할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지...

  • 제프 로슨, 'Ask Your Developer' 저자

왜 오너쉽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의 의욕을 쓸데없는 위계조직 균열로 없애버리고 있는 것일까 고민을 해봤다. 오랫동안 고민 후에 내린 결론은 이 회사는 사람을 향하고 있지 않다라는 결론이었다. 앞서 말한 리더로서의 나의 노력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 즉, 대표는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드러나고 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보고"라는 워딩으로 구성원들 책임을 만들고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노출될 때 조직개편이란 이름으로 나타나며 다시 구성원의 책임을 만들어낸다. 예전에도 대표에게 보고 비용을 아껴야한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시스템화를 하고 보고가 필요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쓴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사업모델이 실패하는 방향으로 가게 됨을 직감했을 때 피버팅을 고려할 수 있는데 이때 구성원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대표는 그렇게 자신이 기획한 사업 모델만의 성공이 아니면 실패했다고 믿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중간관리자의 노력따위...

이후 10월부터 나에게 "구조조정" 이야기로 협박하고 있었다. 대표로서 하지 말아야할 행동은 다 본 것 같았다. 회의시간에 쌍욕섞어 말하기, 반말하기 그리고 "그 조직은 뭐하고 있는지, 놀고있다는 소리가 들리더라"라는 가스라이팅, 구조조정 하겠다는 협박까지... 아무리 나와 동갑내기라지만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중 보통 회사의 대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인간상과 같은 존재라고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렇게 올해 1월 조직개편이 강행이 되었고 나는 퀴팅: 더 나은 인생을 위한 그만두기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나의 그만두기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직에게 있어서도 당연한 것이었다. 시작이 어떠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매출이 없는 조직도, 서비스도, 제품도 끝내야 했다.

전략적 그만두기는 조직이 성공하는 비결이다

  • 세스 고딘, '보라빛 소가 온다' 저자

전략적 그만두기는 모두 내려놓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 회사 대표의 지휘를 받는건 끝내야했다. 이제는 내가 이 회사에 잘못한 것이 무엇이 있나 고민하지 않는다. 내가 애초에 통제할 수 있던 상황은 아니었다. 내가 잘못한 것은 나를 따라주던 구성원들에게 나의 고민들을 털어놓지 못하여 미리 상황을 공유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아무래도 리더가 부재할 경우 구성원들에게 닥칠 위험이 많았는데 미처 고려하지 못한점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구성원들의 줄퇴사가 있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들에게 선택을 하게 만들어 버렸다.